南九州市 清水磨崖仏群 Kiyomizu Magaibutsugun

기요미즈마애불군 (清水磨崖仏)

여기를 흐르는 것은 마노세강. 카와나베마을을 지나, 후키아게하마, 동중국해로 흐르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이 강을 따라 높이 약 20미터의 암벽이 죽 늘어서 있습니다. 정말 신비하고 박력있는 광경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202기의 마애불이 확인 되었습니다.
새겨져있는 것은 오륜탑(五輪塔)•보협인탑(宝篋印塔) 등 공양탑이 대부분이지만, 기요미즈마애불군의 가장 큰 특징은 헤이안(平安)시대 후기부터 메이지(明治)시대까지 약800년에 걸쳐 끊이지 않고 계속 조각 되어 온 점에 있습니다.
현재는 이와야공원으로 정비되어, 넓고 상쾌한 곳이지만, 한때는 아마도 나무가 무성하여 어두컴컴하고, 신비한 곳이었을 겁니다.
분명 카와나베마을 사람들에게 이곳은 특별한 장소였을 겁니다.
산책하면서 살펴보면 똑같이 보이는 마애불군이지만, 거기에는 800년이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도 습관이 조금씩 변화해 가는 모습도 느낄 수 있습니다.
꼭, 마애불 하나하나를 살펴보면서 800년에 걸친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봅시다.

1.에이닌(永仁) 4년의 보협인탑 (宝篋印塔)

위쪽에는 가마쿠라(鎌倉)시대인 1296년 2월 28일에 새겨진 보협인탑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두 걸음 이동하면 왼쪽이 갈색으로 변색 된 큰 판자 같은 바위가 보입니다.
사실은 그 바위 아래에 보협인탑이 새겨져 있고, 거기에 새겨진 이유도 적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쇼우죠우(清浄)라는 여성이 죽은 뒤, 35일째의 공양으로 새겼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상류로 가면 삼대보협인탑이라는 3개가 나란히 새겨진 보협인탑이 있고 거기에도 새겨진 이유가 적혀있는데“쇼우죠우(清浄)라는 여성이 죽은 뒤, 49일째의 공양으로 새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후7일 마다 공양한다는 풍습이 가마쿠라(鎌倉)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00여 년 전 사람들의 마음이 생생히 전해져 옵니다.

2.가마쿠라(鎌倉)시대의 마애불

여기에서 보이는 마애불은 모두 가마쿠라시대에 새겨진 것입니다. 모두 입체적이 아니라 선으로 새겨진 보협인탑 또는 오륜탑입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8걸음 이동해서 위를 올려다보면 두개의 보협인탑과 하나의 오륜탑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수직・수평의 직선으로 그려진 두개가 보협인탑, 그 오른쪽에 위에서부터 사다리꼴 지붕, 원형, 사각형 받침대가 새겨진 것이 오륜탑입니다.
그 오륜탑의 받침대 부분에는 구멍이 파여 있습니다. 그 구멍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2017년(平成29년)에 구멍에 뚜껑이 덮혀있는 보협인탑이 발견되었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화장 된 사람 뼈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기요미즈마애불은 죽은 사람을 공양하는 장소라고만 생각되어 왔지만, 그 외에도 구멍이 뚫려있는 마애불이 몇 개 더 있기 때문에 납골당의 역할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대오륜탑 (大五輪塔)

강 건너편, 정면에 전등이 있고 그 오른쪽에 설명판이 있습니다. 그 설명 판의 뒤쪽에 있는 것이 대오륜탑입니다. 전체 높이는 약 11미터로 상부에 둥근 원형이 새겨져 있습니다.
새겨진 것은 헤이안(平安)시대 후기부터 가마쿠라(鎌倉)시대 초기로 생각되고, 기요미즈마애불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것입니다.
오륜탑의 배경에는 바둑판처럼 10센티 간격으로 새겨져 있고, 그 안에 경전이라고 생각되는 5000자 이상의 범자가 먹으로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범자는 거의 읽을 수 없지만, 아직 먹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대오륜탑 추정복원도(大五輪塔推定復元図)는 설명판 중앙에 있습니다.

이 오륜탑은 뛰어난 불교사상을 표현하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 새겼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4.무로마치(室町)시대의 마애불

3개의 큰 범자가 새겨 져있는 월륜대범자의 아래쪽에 장방형 창문과 같은 연각판비가 있습니다. 그 아래쪽에 부조로 새겨진 오륜탑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 오륜탑은 무로마치시대에 새겨진 것입니다.
이 시대에 새겨진 마애불은 대부분 오륜탑으로 부조로 새겨지며, 작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 시대의 공양탑에는 죽은 사람의 공양을 하는 것도 있지만, 생전에 자신의 공양을 해둔 것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부부로 생각되는 법명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것도 있습니다.
800년 동안 이어져 온 기요미즈마애불군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풍습의 변화도 알 수 있습니다.

5.삼대보협인탑 (三代宝篋印塔)

정면에 병풍처럼 새겨져 있는 것이 삼대보협인탑입니다.
가로 5미터, 세로 4미터 정도의 평평한 표면에 보협인탑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보협인탑의 특징은 중앙의 보협인탑과 우측 보협인탑 사이에 새긴 날짜와 이유가 기록된 점입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1296년(永仁4년) 3월 13일에 쇼우죠우(清浄)라는 여성이 죽은 뒤 49일째의 공양을 위해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의 보협인탑은 이 강 하류에 있습니다. 그 보협인탑은 쇼우죠우(清浄)가 죽은 뒤 35일째의 공양을 위해 2월 28일에 새겨졌습니다.
이 두 곳의 보협인탑에 새겨진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v

6.월륜대범자 (月輪大梵字)

강 건너 우측에 보이는 3개의 원으로 둘러싸인 범자가 월륜대범자입니다.
범자라는 것은 한 글자 한 글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표현합니다. 좌측의 범자는'부동명왕'을 의미합니다.
양측2개의 월륜은 직경이 약 175 센티나 있습니다.
지금은 3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에도(江戸)시대의 기록에는 5개의 범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3개의 범자의 우측, 무너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 4 번째, 5번째 범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월륜대범자가 새겨진 1264 년에는 대혜성이 나타났으며, 그 전에 2 번의 월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염원을 담아서 새겨졌습니다.

7.연각판비(連刻板碑)

월륜대범자의 아래쪽에 가로250센티미터, 세로80센티미터의 16장이 연결된 판비가 창문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연각판비라고 합니다.
판비라는 것은 보협인탑, 오륜탑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을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풍화가 진행되어, 현재는 무엇이 새겨 져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요미즈마애불에 판비는 별로 새겨 져 있지 않고, 16개의 판비가 왜 연속적으로 새겨졌는지 알지 못 합니다.
다만, 조각 방법 등에서 가마쿠라(鎌倉)시대 말기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8.요시다 치잔(吉田知山)이 새긴 마애불

1895년(明治28년)에 요시다 치잔(吉田知山)이란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보물인탑과 십일면관음상, 아미타여래상, 3개의 마애불이 이곳에 있습니다.
기요미즈마애불의 대부분은 선각이지만, 요시다 치잔의 작품은 모두 부조로 새겨 져 있습니다.
십일면관음상과 아미타여래상은 월륜대범자의 우측 아래에, 보협인탑은 정면의 삼대보물인탑 우측 위쪽에 있습니다.
요시다 치잔(吉田知山)은 오사카 출신으로, 엔랴쿠지(延暦寺)와 젠코우지(善光寺), 기요미즈데라(清水寺)
등에서 수행을 쌓고 카와나베마을로 왔습니다. 그 후 소오시 오오스미마을의 츠키노에도 마애불을 남겼습니다.

9.’사쿠라노 야카타’에서 보는 기요미즈마애불군 (清水磨崖仏群)

이곳은 '사쿠라노 야카타'라는 공원 안에 있는 건물입니다.
아침에는 이곳에서 신비한 기요미즈마애불을 볼 수 있습니다.
높이 약20미터, 길이 약400미터. 병풍처럼 깎아놓은 듯한 절벽에 새겨진 202기의 마애불. 이 규모의 크기와 높은 불교적가치로 인하여 1959년(昭和34년) 가고시마현의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연그대로의 바위에 새겨 져 있기때문에, 에이닌(永仁)의 보협인탑은 암벽이 무너졌으며, 월륜대범자도 두 글자가 지워지는 등, 많은 풍화를 겪었습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때의 폐불훼석(廃仏毀釈)에 의하여 모든 사원이 파괴된 가고시마현에 있어서 기요미즈마애불은 그 이전의 신앙을 지금에 전하는 귀중한 유적입니다.
앞으로도 기요미즈마애불을 소중히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